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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약속은 3주 뒤로 잡았습니다

캘린더에 등록되지 않으면 만나지 못하는 사이에 대하여

Hyuna · 2026.08.17
약속은 3주 뒤로 잡았습니다

안녕하세요, Hyuna 입니다. 지난달에 친구에게 연락을 했습니다. 오랜만에 밥이나 먹자고요. 답장은 빨랐는데 내용이 좀 이상했어요. "다음 주는 안 되고, 그다음 주도 안 되고… 3주 뒤 화요일 저녁은 비어 있어." 저는 그 메시지를 한참 봤습니다. 우리가 언제부터 3주 뒤를 이야기하게 됐을까요. 더 이상한 건 제 반응이었습니다. 서운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아, 나도 그때가 낫겠다" 하면서 캘린더를 열었습니다. 3주 뒤 화요일 칸에 친구 이름을 적어 넣었죠. 우리는 그날 만났고, 즐거웠고, 헤어지면서 또 이렇게 말했습니다. "다음엔 좀 더 일찍 잡자."

즉흥이 사라진 자리

예전엔 이런 게 있었습니다. 퇴근길에 문득 전화를 걸어 "너 지금 뭐 해?" 하고 묻는 것. 대답이 "그냥 집"이면 30분 뒤에 만나는 것. 그 시절을 특별히 미화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때는 그때대로 서로의 시간을 함부로 썼으니까요. 다만 그 방식이 통째로 사라졌다는 건 좀 이상합니다. 요즘 우리는 만남을 '일정'으로 다룹니다. 빈 슬롯을 찾고, 확정하고, 하루 전에 리마인드를 보내죠. 효율적입니다. 서로의 시간을 존중하는 방식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이 방식엔 조건이 하나 붙습니다. 미리 계획할 만큼 중요한 사람만 만나게 된다는 것.

3주 뒤를 비워둘 만큼 소중한 사람. 그 문턱을 넘지 못한 관계들은 조용히 사라집니다.

저는 이걸 '약한 연결의 소멸'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아주 친하지는 않지만 마주치면 반가운 사람들이 있잖아요. 예전엔 우연이 그들을 만나게 해줬습니다. 같은 동네, 비슷한 퇴근 시간, 겹치는 단골 가게. 지금은 우연이 끼어들 틈이 없어요. 캘린더는 우연을 등록해주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요즘 하는 일

대단한 해법은 없습니다. 다만 두 가지를 해보고 있어요. 하나는 캘린더에 비워두는 칸을 만드는 것. 토요일 오후 두 시간쯤은 아무것도 넣지 않습니다. 뭔가 생기면 거기에 넣으려고요. 신기하게도 자리를 비워두면 뭔가가 정말 들어옵니다. 다른 하나는 3주 뒤 약속을 잡을 때 덜 미안해하기로 한 것입니다. 3주 뒤는 성의가 없는 게 아니라, 그때까지 서로를 기억하겠다는 뜻이기도 하니까요. 그 사이에 두 번쯤 "그날 잊지 않았지?" 하고 메시지를 보내면, 만남은 하루가 아니라 3주짜리가 됩니다.

이번 주에 누군가에게 연락해보시면 좋겠습니다. 3주 뒤여도 괜찮으니까요. 여러분의 캘린더에는 지금 누구의 이름이 적혀 있나요?

Hyuna관제탑

갈 방향은 그냥 감으로 딱 안다. 좋아하는 메뉴는 피넛버터파스타.